[한경에세이] 도심 속 일상 쉼터, 공연장

입력 2021-10-27 17:29   수정 2021-10-28 00:03

출근길, 복잡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조용한 정동길로 들어선다. 매일 반복되는 길이지만 참 좋다. 바삐 달려가는 수많은 차와 경적소리, 무표정한 사람들의 빠른 걸음이 광화문 사거리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라면, 그 속에 자리 잡은 정동길로 들어설 때면 호흡부터 달라진다. 도심의 소음은 저편으로 사라지고, 돌담 사이의 길을 걷노라면 걸음 속도도 느려진다. 도심 속에 있기 때문에 정동길의 신비로움은 더 짙다. 그래서 정동길에 자리 잡고 있는 국립정동극장은 나에게 극장 경영인으로서 공연장의 공간적 의미와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한다.

도심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삶과 직결된 휴식처가 필요하다. 도심에 위치한 공연장은 도시를 살아내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원초적인 영혼의 안식처가 아닐까 한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새 없이, 바쁘게 반복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인간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에 대한 사유는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일과 시간에 쫓긴 채 그저 하루를 수행해내는 것이 삶이라면 그 얼마나 척박한 일인가!

산으로 바다로 자연을 만나러 갈 시간과 여유는 없지만, 다행스럽게 우리의 도심엔 공연장이 있다. 공연장에서는 무대를 통해 산도 만나고, 바다도 만날 수 있으며, 내 고민의 바닥과 위로, 그리고 치유를 만날 수 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영혼을 만나기도 하며,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눈앞을 스치는 황홀한 장면, 장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고, 때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도심 속 공연장은 가까이에서 우리의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살찌운다.

극장(theatre)의 어원은 관람석(theatron)에서 나왔다. 즉 공연장에서 ‘무대’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바로 ‘객석’이다. 무대를 바라보고, 극장을 찾아와 주는 이를 위해 공연장은 존재한다. 이 때문에 현대 도심 속 공연장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공연장은 창작자들의 행위 공간이면서 동시에 현대인들의 지친 일상을 대변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장소이자 누구나 찾아와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창작자가 최상의 상상력을 무대에 쏟아낼 수 있는 공간, 관객 누구나 찾아와 공연과 공간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 도심지의 공연장은 늘 사람과 함께해 삶과 예술과 인간과 영혼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현장이 되어야겠다. 유럽의 많은 극장들이 지금까지도 복잡한 도심 속에서 그 역사와 위엄을 뽐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문화적 힐링을 선사하며, 그 역할과 의미를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더없이 지친 날엔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돌려보길 독자에게 권하며, 마지막 에세이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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